[기록 36.5℃-장인의 손] 맷돌장인 안병환

Channel: Thetv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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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을 기억하십니까? 작은 구멍에 불린 콩을 넣고 드르륵 드르륵 돌리면 하얀 콩물이 쏟아지던 풍경. 어린 눈에 비친 맷돌은 세상의 그 무엇도 갈아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집집마다 하나씩 있던 맷돌은 언제부턴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보기조차 어렵게 된 맷돌, 아직도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큰 길 가의 가건물. 우리나라 마지막 수제 맷돌장인 안병환 옹의 작업장입니다. 허름한 곳이지만 여기저기 쌓아놓은 맷돌들이 긴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장인은 언제부터 맷돌과 인연을 맺게 됐을까요.

지금도 맷돌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또 그걸 사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조금 신기할 정도 입니다. 대체 이 맷돌들은 누구 사가는 걸까요.

맷돌을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맨 먼저 넓적하게 자른 돌을 정과 망치로 따내는 것부터 하는데요. 맷돌 형태가 나올 때까지 따내고 다듬고, 지루할 정도로 계속됩니다.

돌 조각이 마구 튀는데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망치질. 자칫 잘못하면 손을 때릴 것 같은데 실수하거나 다친 적은 없었을까요?

다음은 도끼로 돌의 거친 표면을 다듬는 과정입니다. 일흔 셋의 노인이 하기에는 무척 힘들어 보이는 일입니다.

이번엔 '다대기'라는 도끼보다 조금 작은 도구로 표면을 다듬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쪼아내야 표면이 제대로 만들어집니다.

돌을 쫄 때마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납니다. 둘러보니 주변이 온통 먼지투성입니다.

장인은 어떻게 해서 휴전선이 멀지 않은 이곳 전곡에 자리를 잡았을까요. 맷돌에 쓰이는 현무암이 많이 나는 곳이라는 이유 말고도 분명 사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손을 멈춘 장인이 잠시 고향생각에 빠집니다. 지금도 전망대에 오르면 고향 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전망대마저도 안 가고 있다며 쓸쓸한 표정을 짓습니다. 무슨 사연일까요.

맷돌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췄습니다. 그런데 굵은 철사로 돌 표면에 뭘 그리기라도 하는 듯 몇 바퀴 돌리는데요. 이건 무슨 작업인가요?

맷돌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노인 혼자 하기에는 힘이 부쳐 보입니다. 장인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어처구니라고 부르는 손잡이, 그리고 맷돌의 위짝과 밑짝을 이어주는 중쇠 달 곳을 파내는 작업이 남았습니다. 중쇠는 뾰족한 수쇠와, 수쇠와 짝을 이루는 암쇠로 이뤄지기 때문에 아래‧위 두 개의 구멍을 파야 합니다.

다음은 맷돌 위짝의 한 가운데에 입 같은 그림을 그리고 파내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아구리 구멍' 파기라는 작업입니다.

그나저나 이 험한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럼, 명맥이 끊길 수도 있겠네요?

이제 마무리만 남았습니다. 파놓은 구멍들에 중쇠와 어처구니를 달 나무들을 맞춰 넣습니다. 박아 넣은 나무에 암수 중쇠를 끼우고 어처구니를 달면 모든 과정은 끝납니다.

완성된 맷돌을 장인이 천천히 돌려봅니다. 잘 돌아가는데요. 장인의 얼굴에도 흡족한 미소가 어립니다. 무려 48년을 함께 해온 맷돌, 장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하지만 맷돌과 그렇게 정이 들었다는 장인도 이제는 지친 표정입니다. 혹시 포부가 없는지 물었더니 고개부터 내젓습니다.

국가에서 지정한 무형문화재만 장인으로 불러야한다면 안병환 옹은 장인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늘 속에서도 묵묵하게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한, 그래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장인이 아닐까요? 평생 돌과 싸우느라 거칠어진 그의 손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손이었습니다.

글 / 이호준 선임기자 sagang@seoul.co.kr

영상취재·편집 / 문성호 PD sungho@seoul.co.kr